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문단 편집) === 일화 === 그래도 젊은 시절 투사의 면모가 있어서 마치 [[로버트 무가베]]와 [[아메드 세쿠 투레]], [[폴 포트]]가 그랬듯이 "과거에는 순수한 꿈을 가진 혁명가였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태초부터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차우셰스쿠와 같이 생활했던 동료들은 [[강약약강|위의 사람들에게는 온갖 아첨과 아양을 떨었으나 아랫사람들은 무자비하게 괴롭혔으며]] [[소시오패스|경멸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인간이었고, 부하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악한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인성을 보여주는 일례로 수감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 수 있다. 그가 수감되었을 때 동료 재소자 중 오스만이라는 사람이 심각하게 아픈 상태였는데, 재소자들은 그를 위해 음식을 십시일반 모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그 음식을 차우셰스쿠가 중간에 먹어버렸다. 이를 두고 동료 재소자들이 차우셰스쿠를 몰아 세우며 비난하자 그는 성장기 청소년의 생존권(?)을 근거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만약 이때 배가 고파 그랬다고 하면서 사과라도 했으면 동료 재소자들은 이해하고 용서할 여지가 있었지만 차우셰스쿠는 그마저도 걷어찬 것이다.] 이에 재소자들은 크게 분노하여 그를 처참할 정도로 폭행했다. 이후 그는 말을 더듬는 버릇과 어눌한 말투, 잘 웃지 않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찍은 사진 중에서 차우셰스쿠가 활짝 웃는 사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공산권 국가들의 수장 중에서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그의 저질스러운 인성을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나치에 맞서 파르티잔 활동을 하는 등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티토는 집권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와 멧돼지 사냥을 나선 적이 있는데, 차우셰스쿠가 산탄총으로 먼저 멧돼지를 쐈지만 맞지 않았고, 티토는 백발백중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그가 달려와 자기가 잡았다며 멧돼지를 가로채려 들자, 티토는 "이봐, 당신의 총알은 땅에 박혀 있을걸?" 라고 디스하면서 멧돼지를 가져갔다. 이 일이 있은 뒤, 티토는 절대로 차우셰스쿠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단지 공식 석상에서만 가까운 척 했을 뿐이다. 한번은 한 외국 언론인이 차우셰스쿠에게 ‘엘레나가 귀하의 부인이라는 사실 이외에 정치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차우셰스쿠가 말하길. >“사회주의 정부의 조직제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는 집단 지도체제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의기구의 의사 결정에 노동자들과 함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지요.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노동자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활동하는 기업이나 경제적, 사회적 조직에는 이런 심의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모든 문제에 대해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요. 정부 또한 집단적인 지도체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회의 역할을 대신하는 당에서는 중앙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국가 발전과 외교 정책에 관한 문제들을 결정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부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엘레나도 사회 발전에 관한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한 마디 질문에, 저런 일장연설을 했다.[* 한반도에도 이런 한 마디 말과 질문에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정일]]이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들을 다 빼고 요점만 짚자면, 엘레나는 우리나라의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인물이니 외신 기자인 당신은 신경 끄라는 것. [[이오시프 스탈린]]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누구라도 스탈린을 비판하면 화를 참지 못하여 말을 더듬거리거나 폭력까지 휘둘렀을 정도였으며, 차우셰스쿠의 누나 니쿨리나(Niculina)가 1966년에 밝힌 바에 따르면 15살이던 니콜라에가 갑자기 며칠간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자 구두 수선공이던 남편이 니콜라에의 뺨을 때리며 '네가 장사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라고 하자 차우셰스쿠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장사하는 것을 배우지 않을 거에요. '''저는 루마니아의 스탈린이 될 거에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항공사고에 연루된 적이 있다. 1957년 11월 4일에 차우셰스쿠는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는 [[Il-14]]에 탔으나, 이 비행기가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에 악천후로 인한 조종사 과실로 공항 인근 숲에 추락했고, 이 과정에서 당시 외무부 장관 그리고레 프레오테아사(Grigore Preoteasa, 1915~1957)과 승무원 3명을 포함해 4명이 사망했으나 차우셰스쿠를 포함한 다른 승객들과 조종사들은 비행기가 화염에 휩싸이기 전에 간신히 탈출했다.[* 원래 이 비행기에는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도 탈 예정이었으나, 며칠 전에 강한 독감에 걸려 타지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